과거 왕조시대 때 왕은 가뭄과 홍수가 심해지면 자신의 부덕(不德)함을 반성하고 하늘에 제를 올렸다. 물을 다스리는 것은 국가의 존망을 좌우했다. 곤(鯀)과 우(禹) 부자는 태평성대의 모델로 불리는 신화 속의 군주 요(堯)임금 시대에 살았는데 물 때문에 죽고 살았다. 아버지 곤은 치수에 실패해서 죽임을 당했고 우는 치수에 성공해서 왕이 되었다. 똑같은 물을 다루었는데 왜 그들의 길은 갈라졌을까.

   

  황하는 자주 범람했다. 때론 역류할 때도 있었다. ‘서경’과 ‘맹자’를 보면 요임금 시절부터 황하가 역류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자애로운 군주 요임금이 황하의 범람으로 밤잠을 설칠 때 신하들이 적임자를 한 사람 천거했다. 그가 바로 곤이었다. 곤은 임명장을 받자마자 곧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그의 판단은 신속했고 행동은 민첩했다. 현장검사가 끝나자마자 그는 즉시 치수사업에 돌입했다. 곤이 선택한 치수사업의 골자는 흙으로 둑을 쌓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아무리 둑을 높게 쌓아도 폭우가 한번 쏟아지고 나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무너지면 쌓고 무너지면 또 쌓는 일을 9년 동안이나 되풀이했다. 결국 그는 치수사업 실패의 책임을 지고 죽임을 당했다.

   

    그 다음 해결사로 등장한 사람이 우였다. 우는 치수사업의 사명을 띠고 태어난 사람답게 오로지 치수에 매달렸다. 흙을 나르고 도랑을 파느라 손발에는 굳은살이 박이고 정강이는 털이 날 새가 없어 반질반질했다. 오죽하면 13년 동안 한번도 집에 들르지 않을 정도였을까. 결국 우는 갖은 고생 끝에 치수에 성공하여 왕위에 오른다.

   

    똑같은 물을 다스리면서도 아버지는 실패하고 아들은 성공했다. 이유는 물을 이해하는 시각 차이 때문이었다. 곤은 물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자연의 힘을 무시한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흙으로 물을 막으려고만 했다. 그러나 우는 달랐다. 아버지의 실패를 오랫동안 지켜본 우는 억지로 물길을 막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물길을 터서 흘러가게 했다. 대신 물길을 분산시켜 힘을 약화시켰다. 현명한 우는 사람이 자연에 대항하여 함부로 맞서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한 것이다. 


  ‘맹자’에는 현명한 우의 행동을 이렇게 찬탄했다. ‘만약 지혜롭기가 우가 물길 터놓듯이 한다면 지혜를 혐오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우가 물길을 흘러가게 한 것은, 그 무사(無事)함을 행한 것이다.’ 이래저래 물 때문에 논란이 많은 우리 시대에도 한번쯤 되새겨볼 만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만나는 사람과의 사이에도 제대로 물길을 터놓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발췌> 주간조선 ::: "물을 물로 봤다가는 큰코다친다" 미술사가 조정육


▲ 마원 ‘황하역류’ ‘12수도(十二水圖) 권 중 6’, 중국 송, 비단에 연한 색, 26.8×478.3㎝, 고궁박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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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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